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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석 역사 이야기

기사승인 2019.10.07  18: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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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낙성(1718년~1798년)

홍낙성(洪樂性)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척신으로 본관은 풍산(豊山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홍씨 자는 자안(子安)  호는 항재(恒齋) 고조할아버지 홍만용은 이조판서를 지내고  할아버지 홍석보는 이조참판을 지내고 아버지 홍상한은 병조판서와 판의금부사를 지내고 어머니 함종 어 씨는 호조참의와 세자시강원 찬선을 지낸 어유봉(魚有鳳)의 딸이다.

▲홍낙성

부인 청송 심 씨는 증 좌찬성 심규(沈규)의 딸이며 영조의 부마 청성위(靑城尉) 심능건의 고모이다.
홍낙성은 경의왕후(敬懿王后 : 혜경궁 홍씨)의 6촌 동생이며 좌의정과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과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낸 홍인한의 5촌 조카이다.

홍낙성은 외할아버지 어유봉의 문인으로 음보(蔭補)로 통덕랑을 지내다가 1744년 춘당대문과의 정시문과에 급제하고  정언을 제수 받고 이어서 지평과  사간을 지냈다.
그 후로 여러 관직을 거쳐서 1757년 대사성에 오르고 이어서 이조참의, 강화부유수, 가선대부, 이조참판 형조판서를 거쳐서  1768년 이조판서에 올랐다.
그 후 우참찬을 지내고, 산릉도감제조와 전라도관찰사, 병조판서, 판의금부사, 예조판서, 공조판서, 수어사, 우참찬, 좌참찬, 지경연사, 이조판서, 우참찬, 형조판서를 지냈다.


1776년 영조가 손자인 세손 이산에게 대리청정을 시키려고 하자 세손 이산의 외할아버지 좌의정 홍인한은 "세손은 노론이나 소론을 알 필요도 없고, 이조판서나 병조판서를 누가 할 수 있는지도 알 필요도 없으며, 국사(國事)를 명확하게 알 필요도 없다." 라고 하면서 세손의 대리청정을 반대하면서 외할아버지인 홍인한은 홍상간, 윤양로 등 벽파들과 함께 세손 이산을 모해하려고 하자 홍낙성은 작은아버지 홍봉한과 족질(族姪 : 같은 성을 쓰는 일가) 홍국영(洪國榮)등 시파들과 함께 세손을 보호하고 세손이 왕위(정조)에 오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고, 정조의 외할아버지 홍인한과 벽파를 몰아 내고 홍인한을 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도로 위리안치 시켰다가 사사시켰다.

1776년 3월 10일 경희궁 숭전문에서 정조가 즉위하고 우의정을 거쳐서 좌의정에 오르고 1784년 사은사로 청나라 북경에 다녀왔다.
1793년 영의정에 오르고 1797년 정조로부터 궤장을 하사받고 중추부영사(中樞府領事 : 정1품 명예직)를 제수 받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1798년 홍낙성이 졸하자 정조는 효안(孝安)의 시호를 내렸다.

글,사진:이상석
 


이상석 webmaster@dasanjournal.co.kr

<저작권자 © 다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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