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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모의 고향 작품 시리즈

기사승인 2019.09.27  11: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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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산산과 회포마을

작품 속의 백산은 부안에서 신태인으로 가 30번 국도로 6km쯤 달리면 백산 삼거리에 이르기 전(前) 우측 들머리에 산(백산,해발47m)과 산 허리에 위치한 마을이 회포(回浦)마을 풍경이다. 회포마을은 강변마을도 아니고 포구도 없는데도 회포인 것을 보면 예전에는 마을 앞까지 바닷물, 강물이 드나들었음을 그 이름만으로도 짐작하기에 충분하다.

노령산맥의 줄기 정읍의 내장(內藏)과 입암(笠岩)에서 발원한 물이 남출북류(南出北流)하면서 굽이굽이 에돌고 휘돌아 동진강(東津江)을 이루어 이 마을에까지 왔다 하여 ‘돌아올 회(回)’ 자의 회포라 한 이름일 것이다. 회포에서 서편으로 채석장을 지나 조금 가면 백산을 등지고 서북향으로 있는 마을이 용계마을이고 마을 앞으로 흐르는 고부천에서 용이 승천하였다 하여 용계라 했다고 한다. 혹 ‘영기동’이라고도 하였다 하나 이는 용계동, 엥기동, 영기동으로 이어지는 음운의 변형에 의한 호칭이다. 

용은 실존하는 동물이 아니고 상상의 동물일 뿐인데도 가장 성스러운 동물 네 가지(四靈)의 으뜸으로 대접하면서 특히 땅이름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부안 지방에서는 특이하게 백산 지방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이유는 물과 연유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부안과 정읍을 흐르는 동진강이 감싸고 있는 '산' 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작은 '언덕배기'다.  그러나 이 산은 부안, 정읍,김제에 이르는 인근의 평야지역에서 보면 우뚝 솟아있어 산위에 올라서면 주변이 다 보이는 곳으로써 삼국시대 백제 군사적 요충지로 널리 활용되었던 산이다.

백산성은 1976년 4월2일 전북지방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되었다가, 1998년 9월17일 대한민국의 사적 409호 백산성(白山城)으로 지정되었고 2011년 현재의 명칭 '부안 백산성'으로 변경되였다.

백산성은 고부(古阜)와 부안으로 갈라지는 지점에 있는 백산에 축조된 성이다. 산의 동쪽 기슭에는 동진강이 흐르는데, 일찍이 이곳은 서해안 해상 교통의 요충지로써, 고종 31년(1894년)에 고부군수 조병갑 등 탐관오리의 가렴주구에 농민들이 시달리다 못해 고부의 전봉준장군과 동학교도 농민들이 이곳에 본진으로 사용했다. 

그 당시 이 소식이 알려지자 1만여 명의 농민들이 모여 그들이 서면 산이 흰옷으로 덮이고 앉으면 손에 든 죽창이 가득하다고 해서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지금의 김제 죽산면에 위치한 산)이라는 말이 생겨난 고장이다.

지금은 산 위 정상에 최근에 지은 팔각정만 있지만 옛 동학농민이 기병한 최초의 장소로써 비록 창의비만 옛 역사를 보여주고 있지만, 농민들이 나라의 주인의식을 가지고 최초로 스스로 일어난 장소라는 뜻깊은 역사의 장소로 남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려보고 글을 마치고 싶다.

 

오산 홍성모 화백 webmaster@dasanjournal.co.kr

<저작권자 © 다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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