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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고 싶다면 지금 당장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고 자아의 본질을 찾아라.

기사승인 2019.09.21  14:4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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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에 행복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이들을 행복전도사라 부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행복전도사 본인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나는 별로 본 적이 없다.

내 주위에도 행복이라든가, 성공 같은 화두를 강의 요체로 삼고 먹고사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의 평소 모습에서 행복의 순 결정체를 포착하기란 쉽지 않다.

물론 타인을 만나는 순간 카멜레온처럼 변신하기는 하지만, 마치 감정노동자의 내면에 동참하는 바탕에는 우주의 고독이 짙은 음영으로 깔려 있다.

언젠가 지병이 심해져 부부가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쌨던 카피라이터 최윤희의 경우에서 우리는 고통의 무게를 감내하는 행복전도의 실체를 보아야 했다.

국민행복을 위해 존재하는 기구와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것에 '정부'와 '정치가'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나 그들이 국민을 행복하게 한 적은 없다. 그저 자신과 일족만의 행복(?), 아니 존재의 의미를 망각한 물질의 풍요만을 좇을 뿐이다.

행복이나 성공을 담보하는 강의를 듣거나 책을 본다고 해서, 행복해지거나 성공의 급행열차를 잡아탈 수는 없다. 스스로의 삶이 성공적이라고 자위한다고 해서 행복한 거라 확신하는 愚를 범하는 사람은 없다.

헌정 70년이 넘는 동안 국민행복은커녕 나라의 곳간을 거덜 내고, 자신들의 배때기만 배불리려 애쓴(?) 위정자들만 득실했다. 그 결과 상위 몇%와 대부분의 개돼지가 생겼고, 사회는 불행해졌다. 그 사이 벌어진(물질과 계급) 간극은 이제 메울 방법이 없다.

<낯짝 두껍다.> 라는 말을 한다. 참 불편한 말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에서는 확실히 통용되는 말이다. 낯짝 두꺼운 놈이 잘 살고 한자리한다. 그런 이들의 틈새에서 살아남으려면 그저 납작 엎드리고, 비겁을 온몸에 두른 채 아부 아첨하며 살아야 한다.

반성하지 않는 사회에서 행복은 장롱면허일 뿐이다. 염치없는 세상에서 배려는 들판에 지천으로 피어 있는 들꽃일 뿐이다. 보이는 곳에 있어서 늘 바라보지만, 무심코 지나치거나 거들떠보지 않는 무의미한 존재. 행복은 메아리로 떠돌다 가슴에서 恨으로 맺힐 뿐이다.

학창시절 우리는 '다독다작다상량'을 배웠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순서가 달라야 한다. 다독 다작이 아니라 많이 읽은 다음에는 많이 생각해야 내가 내 글을 쓸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하여 '다독다상량다작'의 순서라야 맞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동력에도 이 말은 적용된다.

전인적인 교육으로 올바른 품성과 교양을 간직한 사람이, 풍부하고 생산적인 콘텐츠를 가지고 국리민복에 임해야 한다. 이성과 감성을 적절히 갖춘 현명한 생각으로 내 주위는 물론 나와 상관없는 타인에 대한 배려도 아끼지 않는 지도력으로 爲政에 임해야 한다.

어리석은 백성들이 위임委任한 자리를 무단 점거한 자들이, 헌정 이후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되어 기득권을 이뤘다. 그 사이 국민행복은 땅을 파고 들어가 棺 속에 묻혔다. 캐낼 방법도 도리도 없다.

思考(생각) 없이 살다 보면 좀비가 될 뿐이다. 삶의 여로는 自我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행복은 그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느끼는 희열喜悅이다. 생각이 없이 살다 보면 생기는 것이 어용이다. 주관 없이 휘둘리는 맹목의 치욕만이 거듭될 뿐이다.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지금 당장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안목을 기르고 자아의 본질을 찾아라. 자아의 본질을 찾는 과정은 그리 녹록하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하다. 삶의 여로가 뻥 뚫린 고속도로는 아니지 않는가.

행복이 가까이 있는 거라 해서 무조건 가족이 최고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가족은 나와 직접 관련 있는 혈족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의 발전과 종교의 말씀이 인정하는 자리에 있는 家族에는 全 宇宙가 놓여 있다.

나의 생각을 바탕으로 내 목소리로 세상에 외쳐라. 생각 없는 습관적인 행위가 부르는 맹목은 시궁창에 버려라. 그리고 더 많이 읽고 치열하게 思考 한 후 세상과 맞짱을 떠라.

명심할 일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통 큰 그릇'에 반드시 사람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단순히 정치적인 수사(레토릭)로서의 사람이 아니라 진실한 의미로 존재하는 인간에 대한 敬意가 선행되는 그릇이 정녕 필요한 것이다.

"그 그릇에 담길 생각 없는 존재는 없다. 그 그릇에 담길 무질서하고 부조리한 [사람]은 없다. 어쩌면 그 그릇 안에 우리가 그렇게 찾아 헤매는 幸福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박철민 작가. 칼럼니스트 webmaster@dasanjournal.co.kr

<저작권자 © 다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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