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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를 원칙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 발전시키는 제언

기사승인 2019.08.01  15:3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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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갈등과 대립의 차원을 넘어 사실상 경제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한국과 일본이 벌이고 있는(문재인 정권과 아베 정권) 21세기 전쟁을 원칙적이고 창의적이며 미래지향으로 해결 발전시키는 것이 가장 좋은 최선인데, 이에 대한 묘수가 무엇일까?

되돌릴 수 없는 이미 지나간 역사를 두고 벌이는 소모적인 감정과, 복잡하고 지난한 법리적 다툼은 논외하고, 한일 양국의 입장을 역지사지하여 보면, 특히 한일 양국 국민들이 중시하는 문화적 정서를 보면, 답이 있다는 생각이다.

문제는 개헌을 하여 전쟁을 하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한반도와 갈등을 유발시키고 있는 일본의 극우 아베 정권과, 안팎으로 드러난 실정 특히 실패한 대북관계와 경제파단의 실정을, 국민들의 반일 감정으로 깔끔하게 덮어버리고, 다가오는 총선에서 승리를 꿈꾸고 있는 문재인 정권을 보면, 한일 관계를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으로 해결 선린우호의 관계로 반전시켜나갈 방안이 있어도,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난관이고 문제다.(과연 문재인 정권은 국권을 훼손하지 않은 어떤 방식으로든, 문제를 해결할 의지는 있는지 의문이다.)

설마하니 아베 정권과 문재인 정권이, 서로 물밑에서 합의하여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은 아니겠지만, 지금 문재인 정권이 대응하고 있는 것을 보면, 한겨울에 불어오는 동남풍의 존재를 알고, 그때를 이용하여 적벽에서 화공(火攻)으로 조조의 대군을 물리친 제갈량의 꼼수가 보인다는 것이 문제다.

알기 쉽게 설명하면, 아베의 도발은 예측된 동남풍이고, 화공(火攻)은 국민들을 부추긴 반일 감정이며, 그 반일 감정의 화공이 목표한 타깃은, 문재인 정권이 드러난 자신들의 실정을 일거에 덮어버리고, 다가오는 명년 봄날의 총선에서 야당에 압승한다는 전략으로 보면, 딱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어디서 누가 불을 싸질러 촉발시켰든,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아베 정권을 향한 것이 아니고, 일본 국민들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문제지만, 정말 우리들이 알아야 할 두려운 사실은, 이 반일 감정이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깨끗하고 완벽하게 덮어버리고, 다가오는 총선에서 승리하는 전략으로 기획되어 실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이 반일 감정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도한 아베 정권을 징벌하고, 우리가 일본을 극복하는 과정이어야 하는데, 이 반일 감정의 최종적인 목표가 문재인 정권의 실정을 덮고 다가오는 총선에서 대승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말이다.

원론으로 돌아가서, 아베 정권이 마치 울고 싶은 놈 뺨 맞은 격으로, 강제징용 배상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이 나는 순간, 문재인 정권을 향해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것은, 문재인 정권이 임명한 대법관들이 내린 판결을 순수한 법관들이 결론지은 법리적 판단으로 보지 않는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반대로 문재인 정권은 정치와 대법원의 결정을 철저히 분리 대응하며,(그런 시늉이라도 했어야 했다.) 한일 관계를 원칙적이고 창의적이며 미래지향적으로 새롭게 바꾸어나가는 정치력을 냈어야 했는데, 밖으로는 교묘히 아베를 도발시키고, 안으로는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부추겨 자신들의 실정을 덮고 총선에서 승리하는 도구로 만들어버린 탓에, 지금의 상황은 진퇴양난으로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이, 한일 관계를 쉽게 풀어낼 수 없는 최대의 벽이고 걸림돌이다.

부연하면, 이제 와서 문재인 정권이 어떤 해결안을 낸다는 것은, 곧 자신들이 불질러놓은 반일 감정이라는 국민여론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정권의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결코 합리적이고 창의적인 해결 방안은 내지도 못할 것이고, 수용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을 극복하는 극일의 철학과 방법으로, 100여 년 전 항일의병과 독립운동을 이끌어갔던 이 땅의 애국지사들과 그 모진 세월을 겪어내고 살아남은 우리 선조들이 지켜내려 혼신의 힘을 다하며 지켜냈던, 스스로 더럽히며 욕되지 않은 삶을 추구했던 한민족의 정신문화인 자아자존의 정신에서, 우리 국민들의 감정은 물론 선량한 일본 국민들의 합리적인 감정을 손상하지 않고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하여 촌부가 제시하는 것은, 일본 대법원과 정부의 판단이 다르고, 한국 대법원과 정부의 판단이 전혀 다른 강제징용 배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우리 법정에서 내린 결정은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한 뼈저린 반성과 사과의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배상을 하여 주고, 일본 정부의 행위가 옳고 그르냐의 판단은, 문명한 세계의 인류학자들을 비롯한 양국 학자들과 국민들의 판단에 맡기라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섬진강 유역 항일의병과 독립운동을 연구하며 발굴해온 촌부가 감히 단언하건대, 3.1만세운동을 일으켰던 그때 그날의 혼령들을 모두 모셔다, 오늘 한일 양국을 혼란으로 빠뜨리고 있는, 이 배상 문제를 민족적 차원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를 묻는다면.......

특히 정부와 정치인들 그리고 학자들이 제시하는 안과, 촌부가 제시한 안을 두고 찬반을 묻는다면, 촌부의 안이 단연코 앞설 것이라는 생각이다.

굶어 죽을지언정 불의에 꺾이지 않는 것이, 한민족의 기개이며 자아자존의 정신문화이니, 촌부가 연구했던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1833∼1906)을 비롯하여 간재(艮齋) 전우(田愚, 1841~1922년), 연재 송병선(宋秉璿,1836~1905년), 매천 황현(黃玹, 1855∼1910),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1864~1921), 그리고 이이제(怡怡齊)에서 의병을 일으켜 나라와 백성들을 지켜달라는 고종황제의 밀지를 받들었던, 호남 의병장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과 은일지사(隱逸之士) 해관(海觀) 윤용구(尹用求 1853~1936년) 하정(荷亭) 조병순(曺秉順 1876∼1921) 등등 이들 애국지사들이 울분을 토하며 외쳤던 정신을 상기하여 보면......

굳이 일본의 아베 정권이 못 주겠고 하는 걸 받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애초에 스스로 개화하지 못하고 왜놈들이라고 무시했던 일본에 당해버린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뼛골에 새길 뿐, 처음부터 책임을 물을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좀 더 직설로 설명하면, 그것이 직접이든 간접이든 우리가 일본과 전쟁을 해서 이긴다고 생각하는 바보들은 문재인 정권을 지지하고 있는 사람들 이외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명이 발달한 21세기에서 진정으로 승리하는 것은, 정의와 진실 즉 정신문화로 이기는 것인데, 그것은 속된 말로 쪽팔리면 지는 것이니, 우리가 스스로 참되고 당당하여,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아베 정권을 쪽팔리는 정권으로 만들게 하자는 것이다.

일본과 일본 국민들로 하여금, 과연 문명한 21세기에 어울리는 선진국이며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 국민들인지 스스로 자문하게 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혹자들은 일본은 결코 반성하지 않을 거라며 극단적인 반발을 하겠지만, 일본이 반성하고 하지 않고, 또는 깨닫고 못 깨달은 것까지, 우리가 시비하고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가 할 바만 당당하게 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의 아베도 문제지만, 진짜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은 문재인 정권이다. 정권의 핵심사업인 대북관계는 김정은의 조롱거리가 돼버렸고, 외교는 동구 밖 삼거리 주막집 주모의 수준도 못되고, 국민들의 살림살이는 파탄, 실정(失政)에 실덕(失德)으로 미래가 암울하기만 한 문재인 정권이 국민들의 시선을 한 곳으로 몰아가고, 지지층을 보다 더 확고하게 결집시키고 확대하여 다가오는 총선에서 승리하는 최고의 도구인, 국민들의 반일 감정 놀이를 포기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어려움이 있다.

인류 문명을 보면, 이른바 선동정치가 얼마나 끔찍한 참극을 벌이는 것인지, 히틀러를 비롯한 근현대사에서 분명하게 배웠고, 지금도 지구촌 도처에서 목도하고 있으며, 작금 그 끝을 모르고 격화되고 있는 한일 관계의 문제 역시, 아베 정권이나 문재인 정권이나,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서 벌이고 있는 선동정치의 결과라는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을 촛불로 탄핵하여 죄인으로 만든 것이, 정치인 박근혜를 향한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박빠들이 그 원인이었는데, 우리 국민들은 나라를 위한 정치가 아닌 사람에게 미치는 정치가 얼마나 우매하고 그 폐해가 어떤 것인지를 똑똑히 체험했으면서도, 여전히 사람에게 홀리고 사람에게 미치고 있는 국민들을 보면 암담하기만 하다.

80년대 초 끔찍했던 “삼청교육대”의 존재는 정의로운 사회 구현이라는 선동정치가 그 근본 바탕인데, 5공 전두환 정권을 탄생해서는 안 될 끔찍한 정권이라며, 당시의 법과 제도를 무효화시키는 특별법을 만들어 응징하고 있는 국민들이, 여전히 선동정치에 생각 없이 휘둘리고 있는 것을 보면, 유일신의 미개함에서 깨지 못했다는 북조선 인민들이나, 배워서 의식이 개화했다는 남한의 국민들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 오늘 우리들의 부끄러움이고 비극이다.

 

박혜범 섬진강정신문화원장. 칼럼니스트 webmaster@dasanjournal.co.kr

<저작권자 © 다산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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